<-- 구글 에드센스 --> 소통의 기술: 한국 사람과의 소통 방법 :: Study and Sh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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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님의 소통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오직 한국사람과의 대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자존심을 살려주면 관계가 술술 풀리다 

내뱉은 말은 상대방의 가슴속에 수십 년 동안 화살처럼 꽂혀 있다 -롱 페로우

 

누군가 내게 충고나 덕담을 할 때 혹은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하나 마나 한 위로를 할 때, 실수나 잘못을 했는데 서로 간의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선을 넘어선 훈계를 들어야 할 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마음속으로 '너나 잘하세요'를 생각하게 된다. 입장을 바꿔서 나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고치는 데 도움을 주려고 애를 쓰는데, 분위기가 썰렁하다. 듣는 사람의 얼굴은 갈수록 굳어지고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하며, 마주치는 시선에서는 고마움이 아니라 살기가 느껴진다. 다른 대로 진심을 다해서 잘못된 점을 고쳐주려 하는데 왜 이런 배은망덕한 반응을 보이는 걸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출처: Inc.magazine

 

 

 

솔직한 충고도 전달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진심 어린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너나 잘하세요' 심리다. 상대방이 아무리 훌륭한 조언을 해 주고 도와주려고 노력해도 내가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도리어 반감만 생기게 된다. 그런 반감은 조언이 허황되고 말이 안 되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탁상공론일 때는 오히려 생기지 않는다. 반대로 너무 딱 들어맞는 말을 해서 정곡을 찌를 때 반감이 드는 것이다. 내 문제에 대해서 너무 솔직한 충고를 들었을 때, 아무리 그 사람과 내가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왠지 모를 반감과 저항감이 들게 되는 것이 인간의 심리다. "그게 아니라... 사실은"이라고 하면서 변명을 한다. 그다음에는 "네가 잘 몰라서 그래, 네가 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다고 그래?"라는 식의 저항이 시작된다.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단계다. 그래도 끝이 나지 않으면 결국 "그래, 나 원래 이런 놈이다. 어쩔래? 상관 마, 이러다 살다 죽을 테니까"라는 막무가내 전법을 동원한다. 결국 너와 나의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협박으로 관계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게 된다. 

 

 

 

 

출처(resource): training journal

 

 

 

 

 

 

우격다짐에 사람들은 도망간다

이런 본능적인 저항감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발생한다. 사람에 따라 자기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끝까지 우겨보는 사람들이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속설을 굳게 믿는 사람들이다. 아이들끼리 싸움할 때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끝가지 우기는 아이가 꼭 한 명씩은 있다. 다른 아이들도 처음에는 맞상대를 하다가 끝까지 목에 핏줄을 세우고 달려드는 그 아이를 대하다 보면 상대할 기력을 잃고 "그래, 네가 맞아" 라며 그의 손을 들어준다. 아이는 자지가 이겼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들은 이제 그 아이와는 어떤 문제를 놓고 다툼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은 아이로 생각하고 가까이 지내기를 꺼리게 된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와 매머드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인가와 같은 결론 없는 논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생각이 옳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 아이가 있으면 놀이는 더 이상 성립될 수 없다. 소통이란 상호 간의 주고받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 때 놀이와도 같은 것이다. 한쪽이 룰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통이란 놀이는 재미를 잃어버린다. 재미를 잃어버린 놀이는 더 이상 할 의미가 없다. 이와 같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자기주장만 되풀이하는 것, 더 나아가 '네가 뭔데?'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르게 되는 것은 모두 한 가지 심리에서 기인한다. 바로 자존심이다. 

 

출처(resource): Between Carpools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감을 견디지 못한다

"왜냐하면 나는 소중하니까"라는 CF의 멘트처럼 인간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때, 누군가가 충고나 조언, 혼례를 늘어놓거나 서로 간에 설정한 관계의 수준을 넘어서는 개입을 하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태세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조언을 받아들이면 자신이 상대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너나 나나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지금은 내가 이러고 있지만 왕년에는'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내가 만일 누군가의 훈계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보다 우월하고 나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 되어버린다. 마음의 메커니즘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사람은 자기가 존경할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고, 존경하는 사람이 하는 말은 무조건 듣고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람들은 내가 의존해야 할 대상과 보살펴야 하는 대상인가로 나누는 것과도 같다. 내가 그의 비난을 받아들이는 순간, 둘 사이의 균형은 깨어지고 나는 그에게 의존해야 할 사라밍 되어버린다. 그러나 평소 존경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내가 그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그런 열등한 위치에 서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진다. 그런 이유로 어떻게든 내 처지와 그의 상황을 비슷하게 만들고 싶어 진다. 사람은 자신이 최소한 남보다 못하지는 않다고 여기고 싶은 본능이 있다. '너나 나나'의 메커니즘이다. 내가 하나를 잘못했으면 상대방도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잘못이 있을 것이라 여기고 싶은 것이다.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도 같은 맥락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배고파는 살아도 배 아프고는 못 산다'는 말처럼 무시당하고 열등한 것을 못 참는다. 

 

 

출처(resource): technologyadvice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산다

'왕후장상 씨가 따로 있냐'는 말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법이다. 그러한 마음을 왕자병 환자의 증상일 뿐이라고 한정 비어서는 안 된다. 누구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의 원초적 자기애적 심리는 상황 파악을 왜곡하고 소통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길로비치와 사비츠키 박사의 1999년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쁜 일에 책임을 지기보다 좋은 일을 자기 공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고, 또 자신을 평균보다 나은 사람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자신을 좋게 보고 자신에게 생긴 일을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경향을 '자기 고양 오류 self-serving bias'라 한다. 그리고 이런 심리는 결국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려는 무의식적 노력의 시작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자신을 중산층으로 여기는 사람의 비율은 실제 중간 수준보다 항상 많은 것도 이와 유사한 심리다. 이렇게 사람들은 자신을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면서 그러한 자긍심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살다가 어느 한쪽이 굽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출처(resource): istock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원한을 산다

사람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만큼 자존심이 부서지는 것은 고사하고 약간의 흠이라도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금방 아물지 않는다. 딱지가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금 심한 상처는 흉터가 지기도 한다. 그런 흉터는 그 사람의 정체성의 핵심을 흔들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존심에 상처가 날 일을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불가피하게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자존심과 무관한 일로 넘겨버리려 든다. 자기 탓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기보다 남의 문제로 돌려 보려고 최후의 발악을 한다. 그래서 '내 탓이오'라는 반성과 참회보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방 버가 나올 때가 훨씬 많다.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맹수는 대화를 중단하고 자신의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처럼 ㅅ마람들은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며 자칫하면 상처만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깟 일로 쩨쩨하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 있냐고? 또 묵묵히 일은 하지 않냐고? 아니다. 사람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말을 들은 후에도 방긋 웃으며 "말씀 참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면 누가 제게 그런 말을 해주겠어요? 앞으로도 좋은 충고 자주 해 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의 생채기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다. 마음 소으로는 진정한 감사보다 '그래 너 잘났다. 두고 보고 있겠어'라는 반발심이 더 오래 자리 잡게 된다. 결국 진심 어린 대회의 문은 굳게 잠기고 만다. 물론 표면적이고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관계의 길이야 뚫려 있겠지만. 이런 해석은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말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지탱하는 척추 뼈인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보다 조금 이기적이고 개인적으로 보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 정신이 움직이는 메커니즘이다. 아쉽지만 인간은 이렇게 치사한 존재다. 

 

출처(resource): momjunction

 

 

 

 

 

 

 

자존심을 다스려야 사람을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너나 잘하세요'의 심리가 무조건 합리화될 수 있는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식의 반응은 반성과 후회의 기회를 앗아가 버린다. 자존심을 방어하는 것에만 급 그해 그냥 그 자리에만 머물러있게 된다.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잘못은 후회를 낳는다. 그리고 진심 어린 후회는 내면의 성찰을 불러온다. 비록 자존심은 상처를 입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인체도 면역력이 생겨야 튼튼해지듯이 사람의 마음은 반성을 통해 도리어 강해지는 법이다. 반성을 통해 또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그러한 결심은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고, 결국 내면의 성숙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니 뼈아픈 비판에 직면하여 "너나 잘하세요"를 함으로써 대화를 단절시키기보다는 그냥 잠시 판잔을 유보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일이다. 깨달음은 상처를 도려내는 것과 같은 아픔을 수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통 없이는 성장도 없는 말이 있듯이, 나의 성장을 통해서 관계의 성장을 이루고 싶다면 그러한 아픔도 감내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맞는 말이어서 기분이 나쁜 충고를 들을 때도, 관계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아프지만, 따뜻해지기 위해 가까이 있어야만 했던 두 마리 고슴도치를 떠올리도록 하자. 

 

출처(resource): FFI Practitioner

지금 당신 마음 안의 고슴도치는 어떤 상태인가?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가시를 삐죽 곧추세우고 있지는 않나?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의 가시를 가라 앉혀야 한다. 상처 받은 자존심은 성난 복어와 같다. 한껏 부풀어 오른 몸통의 바람을 빼는 데러 소통을 다시 시작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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